매운 담배 연기가 흩어진다. 서재호는 빈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서재호: 쯧, 험한 꼴 들킬 뻔했고만.
휴대전화 문자함에는 보낸 문자가 가득하다.
서재호가 보냈다던 문자 역시 있다.
서재호: 습관이 무섭다니까. 이 쪽으로 보내놓고 착각하고 있었어.
‘볼 일이 있어서 잠깐 자리를 비우네. 강남역 쪽에서 만나자고’
‘출소했다고 이 번호를 안 들여다볼 줄 알았다면 경기도 오산일세’
‘출소 축하하네. 두부는 좀 구식인데 요즘 뭐가 핫한지 출소를 안 해봐서 알 수가 없네’
‘내일 출소일이야 추카추카 하기로 마음을 정했어’
‘내일 모레군. 축하하기는 한데, 드디어 물가에 애를 버리러 가는 기분인데 괜찮은 건가 모르겠소 이거’
‘빨간 뚜껑 소주가 속을 싹 소독해줬소. 자네는 이거 못 마시지 ^^’
‘감기 나았네. 뭐 먹고 나았게?’
‘개도 안 걸린다는 봄감기에 걸렸소. 숨이 입으로만 쉬어지니 음식 맛이 안 느껴지는데 감기 조심하게’
‘일하기 싫네 자네 나오면 나도 은퇴하고 어디 지리산 산골짝에서 귀농이나 해야지’
‘상갓집 잘 다녀왔네 자네도 육개장 한 그릇 하게’
‘상갓집에 다녀오네. 이제 부친상 모친상은 멸종이고 죄 형제상에 이따금 본인상이래도 어색하지 않은데, 이번에는 부모가 상주라고 하네.’
‘철해 놓은 자료가 안 보이네 사흘째 찾는데 안 보이면 포기하는 게 낫겠지’
‘메롱싱짱와 가나다라마 짠짠 생방송 저녁’
‘입춘대길이네 만물이 소생하는데 자네 기분은 좀 소생하고 있는지 모르겠소 나쁘지 않았으면 하네’
‘농담이고 지금은 어떨런지 모르겠소 이병희 아들래미는 생각할 때마다 맘이 짠해’
‘상일 형님 노래방에서 이병희 노래 부르니까 거짓말 안 하고 모터 달고서 뛰어나가려는 거 뜯어말리다가 골절난 무릎이 아직도 비오면 쑤시는데 ^^’
‘이병희 기일이라고 다큐 하는군 자네 이병희 노래 되게 좋아하던 게 생각나서 연락해봤소...’
‘퇴근하네 꿈자리 신경쓸일 없이 이 닦고 잘 자게’
‘좋은 아침일세 날이 풀렸으니 리프레시 좀 하게’
‘인터뷰 하기 싫네 그런데 내가 기자니까 나가야지’
‘날씨가 아직 추우니 양말 챙겨 신게’
‘좋은 하루 보내시게’
‘새해 복 많이 받으시오 곧 있을 새출발 미리 축하하네’
발단은 그녀의 옛 연락처로 전화를 잘못 건 것이었다.
없는 번호라는 안내음을 듣자, 오미정이 수감되어 해지된 전화번호를 더 이상 누구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허물처럼 벗고 간 과거의 망령 정도는 탐내도 되지 않을까?
문득 작은 욕심이 든 서재호는 누구도 쓰지 않는 전화번호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10년이면 보내줄 때가 되었다.
‘이제 이 번호는 지울 때가 되었소. 앞으로는 새 번호로 연락하겠소.’
전송 버튼을 눌렀다.
고마웠다는 말을 덧붙일까 고민하던 서재호는 그만 휴대전화를 떨어뜨릴 뻔 했다.
당신 누구인지, 언제부터 이 문자를 보았는지 문자를 거듭 보내 물어보았지만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다.
침묵이 서재호를 종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