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아닌 판매자를 만나는 방법은, 판매 장소로 가는 방법과 같았다.
누구도 아닌 남자가 판매자가 되기 위해서는 거래 장소를 명확히 하는 법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 사람은 누구도 아닌 판매자를 만나기 위해 행사장으로 동행했다.
누구도 아닌 판매자: 구매자 분이시죠. 거 미안한데, 당신들 표까지 팔았습니다.
오미정: 어라, 이럼 안 되는 거 아냐?
문현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문현아: 제가 이 행사를 기획한 PD예요. 상관없어요. 암표는 판매처 통해서 취소하면 되니까.
누구도 아닌 판매자: 그렇지만 피디님. 저 한몫 얹어서 파는 짓거리 안 합니다. 원가에 양도한 표를 막 취소하시게?
문현아: 당신, 업자 아니야?
누구도 아닌 판매자: 업자는 업자지. 근데 돈을 안 노려요.
누구도 아닌 판매자: 이봐요, 내가 누구도 아닌 판매자가 되기 전에, 무엇이었는지 압니까?
문현아: 말장난을 칠 기분이 아닌데.
오인하: 나를 모르느냐 하지 말고 죗값을 치르라고!
난데없는 퀴즈쇼에 PD와 감독이 난색을 표하는 동안, 오미정이 입을 열었다.
오미정: 어쩐지 알 것 같아. 당신 말이야…
그의 정체는 바로......!
누구도 아닌 남자: 맞아. 누구도 아닌 거.
누구도 아닌 남자: 그리고 누구도 아닌 관객은 관객이 될 수 없지. 표를 아무리 많이 사도 들어갈 수 없더군.
사회에서 불리는 이름을 가진 사람. 마땅히 있을 장소를 가진 사람.
누군가라면, 누구이기만 하다면 축제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아닌 남자에게는 그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누구도 아닌 남자: 그래서 가진 표를 거래하기로 한 거야. 아니, 거의 뿌렸지.
누구도 아닌 남자: 사람 취급 받는 세상으로 가는 데 한몫 하는 기분 좀 내고 싶어서 그랬다, 왜.
오미정은 오인하에게 눈길을 돌렸다. 이름을 불리고 싶어하던 기색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누구도 아닌 남자: 채팅이 하나 오더군. 세상의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 사람이 있다고.
누구도 아닌 남자: 표 구매자가 그랬어. 그냥 어느 구 몇 번지 주소에 사는 사람으로 불충분하다고.
불릴 이름을 가지고, 뿌리내릴 땅이 있는 사람이라고. 뭐… 그런 말을 하더라.
누구도 아닌 남자: 도로명 주소로 바뀐 지가 언젠데…
대충 절박해 보여서 두 장을 팔았지. 그 말을 하는 그 작자가 같이 가줘야 할 것 같아가지고.
오미정: 결론은 끼워 판 거 아냐?
문현아: 그러네요. 운영진한테 걸릴 바에는 앞 고객한테 팔아치우고 끝내겠다… 그런 이야기 아닌가.
누구도 아닌 남자: 이 인간들이 사람 말을 코로 듣지?
누구도 아닌 남자: 불릴 이름이니 뿌리내릴 땅이니 그런 거 있어도 생각해주는 사람 없으면 말짱 도루묵 아냐?
오인하: 궤변은 궤변인데 말 자체는 일리가 있다. 그쵸.
오미정, 문현아: 넘어가지 마!
누구도 아닌 남자: 거기들이야말로 분위기 깨지 마!
오인하: 반말하지 마!
몇 살이냐, 민증 까라, 오백 살이다, 민증은 없고 호패는 있다. 따위의 실랑이가 계속되었다.
오미정: 그래서, 그 사람 어떻게 생겼어.
오미정: 성별이나 나이, 옷차림. 기억나는 거 다 말해봐요.
누구도 아닌 남자: 나랑 비슷한 나이대의 아저씨였고, 수염이 좀 있었어.
누구도 아닌 남자: 다른 건 기억 안 나는데, 노란 꽃을 들고 있었고.
사실 오미정의 질문은 물으나마나한 것이었다.
그러나 오미정은 물어야 했다.
사연을 줄줄 읊은 구매자가 명확하게......
오미정은 그가 아니길 바랐다.
행동거지는 나사 하나 빠져 어수룩하고, 소지품과 짐은 매일 흘리고 다니기 일쑤며,
좋은 게 좋은 거라면서 노골적인 모욕에도 그냥 웃고 마는 알맹이 없던 놈.
그러나 정작 못 볼 꼴을 보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들었다.
소신 하나를 지킬 수 있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아 보였다.
그렇다면 그 소신에 자신을 맞추어 느긋하게 움직이면 그만이다.
사랑, 그것도 응답받지 못하는 사랑에 아직도 얽매이도록 두고 싶지 않았다.
▷ 다음으로
오미정은 그이기를 바랐다.
오미정은 알고 있다. 위도와 경도로 대표되는 좌푯값을 가진다고 해서 의미를 얻는 것은 아니다.
미정의 이름이 팔자인지, 그 또한 한동안 누구도 아닌 여자였다.
저 여자가 그 사람이지. 그 국회의원 공범. 어린애 몸에 폭탄을 감았대.
내가 딸 키워봐서 아는데 그때 애기 살이 진짜 연하거든. 손목이 케이블타이에 쓸려서 발간 수포가 생겼겠지.
우는 애를 때리고 미용가위로 위협했겠지. 밀치고 좁은 곳에 욱여넣었겠지.
한 명도 아니고 둘이나 그렇게 했대. 살았으니 다행이지.
아닐 수도 있어, 어릴 때 트라우마가 평생 간다잖아.
왜, 그 옆방에 누구도 어릴 때 아빠한테 맞아서 결국 제 애를 운운.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 수군거림은 우습게도 유아연을 애달파하면서 미정이 하던 상상과 꼭 닮아 있어서,
화약 속으로 사라진 사랑에 침잠하자면 풍문과 원한의 내용을 구분하기 점점 어려웠다.
오미정이 유아연을 숨기고 홍설희에게 폭탄을 감았는지,
절규하는 유상일의 앞에서 박수정을 폭사시켰는지.
오미정은 무슨 죄를 지었는가.
인생을 복습하고 복습할수록 감정과 생각이 뒤엉키니 뉘우칠 자신의 죄목을 정할 수 없었다.
도움이 필요했다.
이제는 희미해진 미정의 이름을 누군가 되찾아주기를.
절실히 불러주기를 바랐다.
▷ 다음으로